"천 원을 경영해야 3조를 경영할 수 있다."
마흔 다섯, 회사 사정으로 사직서를 쓰게 된 남성은 절박한 마음으로작은 무역 회사를 창업했다. 발품을 팔며 생활용품을 기획했고, 1997년 천호동에 13평짜리 '천원숍'을 냈다. 오늘날 하루 100만명의 손님이 찾아오고, 연 매출 3조를 올리는 '다이소'는 그렇게 출발했다.
無수저로 45세 창업, 1000원짜리 팔아 3조 매출… “아직도 고객이 두렵다”
1988년, 마흔다섯 살의 박정부는 실직자가 됐다. 아내와 초등생 두 딸을 둔 가장.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후 최연소 생산 관리자로 16년간 몸바쳐 일했지만, 말로만 듣던 ‘파업’이 그가 관리하던 현장에서도 터졌다.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모든 책임의 화살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일곱 살에 북한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그가 지녔던 단 하나의 결심이 위태로워졌다. ‘가족보다 먼저 죽지 말자. 최소한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결혼할 때까진 곁에 있자.’
전국 1500여 개 매장에 매일 100만명이 찾아 ‘국민 가게’라고 불리는 ‘다이소’는 34년 전 박정부(78) 회장의 이런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남들이 퇴직을 고민하는 나이, 새로 시작할 열정이 남아 있을까 자신을 의심했지만, 20대와는 다른 열정이 40대 가장에겐 있었다. 자식과 가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간절함이었다. 사무실도 없이, 혼자 사는 어머니 집에서 밥상을 펴놓고 그는 창업했다.
無수저로 45세 창업, 1000원짜리 팔아 3조 매출… “아직도 고객이 두렵다”
매일 100만명이 찾는 가게 ‘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 단독 인터뷰 1988년, 마흔다섯 살의 박정부는 실직자가 됐다. 아내와 초등생 두 딸을 둔 가장.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후 최연소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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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업 스토리와 함께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해낸 유효기간 없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
2부
'균일가 업'의 본질인 '1000원의 가치'에만 집중해 거품과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핵심에만 몰두하는 '본질경영'에 대한 이야기
3부
일상의 단순한 작은 일을 매일 반복해서 실행하는 것이 기본이며, 세상에 이런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는 박 회장의 현장경영 이야기